아버지의 수상한 외투 : 공대생 아들의 감정일지
저는 작가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잘 쓰지 못합니다. 책은 계속 내고 있지만, 글자보다는 수식이 편합니다.
이 책은 아버지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우리 한국의 아버지는 서양의 아버지상과 다릅니다. 유교 문화 속에서 자란 그들은 무뚝뚝하고, 경제적 책임을 잔뜩 짊어진 채 살아갑니다.
정서적 교류 없이 커온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아버지를 향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첫 문단과 같이 이 문단도 어색하지 않나요?
타인의 감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내 감정도 표현하지 못하는 제가, 가족관계의 글을 쓰고 있자니 참으로 모순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아버지는 출근할 때마다 늘 수상한 외투를 입고 나가셨습니다. XY 염색체이자 감정을 모르는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서로의 감정을 숫자와 공식으로 풀어내는 시도를 합니다.
-------------------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은 저출산 고령화 국가입니다. 심지어 청년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연애도 하지 않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수상한 외투’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어렸을 때, 한국의 아버지들은 웅대한 산처럼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싸늘한 주검이 되어 그를 마주했을 때, 한없이 드넓어 보였던 어깨는 왜 그리도 작고 앙상해 보였을까요.
이 감정의 모순이라는 쳇바퀴에서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고통의 방정식, 그리고 파동 속에서 발견된 아버지와 나의 이야기 - 당신은 이 수수께끼를 풀었나요?
충북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후, 7급 광역시 공무원으로서의 삶을 접고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방황 중인 청년.
문과와 이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도전 속에서, 글쓰기가 얼마나 재미있고도 어려운지를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이과생으로서 숫자와 공식을 다루던 나날이 지나고, 이제는 감정과 이야기의 세계를 탐험하는 중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사건들이나 깊은 철학적 질문들을 글로 풀어내는 것은 매혹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습니다.
계속해서 출판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변화하는 나를 담아내고 싶습니다.